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글라스노스트 · 페레스트로이카 (문단 편집) === [[개혁]]의 [[실패]]와 [[동유럽]]의 붕괴 === [[냉전]]의 한 축을 이루는 [[소련]] 최상층부에서 쏟아져나온 혁신적인 [[정책]]들은 [[이념]]을 막론하고 전 [[세계]]에 엄청난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. 이때까지만 해도 [[자유진영]]과 [[제2세계]]의 많은 [[사람]]들은 막연히 개혁·개방이 [[공산권]]을 지금보다는 더 살기 좋게 하리라고 기대했을 뿐, 그 최종적인 결론, 즉 냉전의 종결에 대해서는 함부로 예상하지 못했다. 고르바초프 개혁의 한계는 바로 '''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'''을 간과했다는 점이다. 단기간에 페레스트로이카, 즉 체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필요했으며,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, 즉 [[정보]]의 자유화가 여기에 필요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리라고 기대했다. 그러나 자신들의 부패를 숨기고자 하는 관료들의 위선적인 태도와 체제의 경직성이 맞물리면서 글라스노스트는 오히려 중앙권력의 추진력을 갈수록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. 더 큰 문제는 열린 사고를 가진 개혁가들에게조차, ''''글라스노스트'가 '페레스트로이카'보다 훨씬 더 명확한 강령이었다'''는 점이다. 정보의 자유화나 [[민주]] 질서의 수립은 기본적으로 '통제'와 '허용'의 문제였지만, 오래 전부터 수렁에 빠져 있던 정치·경제적 지표들을 재건하는 일은 나아가야 할 방향조차도 뚜렷하지 않았다. 석유값이 [[석유파동]] 시기의 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라 소련의 주요 재정적 기반인 석유 [[수입]]은 늘어날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고, [[미국]]과 [[영국]] 등지에서 온 경제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[[시장개방]]을 주장하였지만, 이미 내적 [[균형]]이 붕괴된 경제가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[[자본주의]]의 [[바다]] 속에 떠밀려갈 경우 그 결과는… '''[[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.]]''' 그리고 [[탈냉전]]과 [[소련 해체]] 이후 그 결과로 많은 러시아 국민들은 [[보리스 옐친]] 정부 하에서 극심한 물가상승과 [[빈부격차]] 확대, 복지체계 붕괴를 겪어야 했다. 게다가 몇 개 [[공화국]]의 [[독립]]에 대한 열망과 수십년간 공산당의 강력한 탄압에 억눌려 있던 연방의, 페레스트로이카(정치·경제적 개혁)가 뒷받침되지 못한 글라스노스트(개방)는 그야말로 '''통제 불능의 [[혼돈의 카오스|사회적 혼돈]]'''으로 이어졌다. [[동유럽]]의 지도자들은 곧 정권의 힘만으로는 끝없이 불어나는 [[대중]]의 [[힘]]을 통제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, 소련은 [[브레즈네프 독트린]]을 일찌감치 폐기함으로서 이미 [[위성국]]의 공산당에 대한 보호를 사실상 철회한 상태였다.~~하긴 제 코가 석자인데~~ [[동유럽 혁명|결국 1989년에서 1991년 사이 동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격변기를 거쳐 민주정부로 권력을 넘겨주게 된다.]][* 그런데 [[선거]]가 허용되자마자 옛 공산당의 후신 정당이 다시 [[여당]]으로 당선된 케이스도 있다.~~ 그런데 사실 원래도 일단은 [[민주주의]]긴 했으니 뭐… [[인민민주주의]]~~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